1.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
인공지능에 대해 민스키(M. Minsky)가 ‘인간에 의해서 행해진다면 지능을 필요로 했을 때의 일을 기계로 하여금 하게 하려는 연구’로 정의하였고, 이에 앞서 튜링(A. Turing)은 ‘인간의 마음의 행위를 매우 가깝게 모의할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를 인공지능의 핵심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계산주의와 연결주의의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강한 인공지능과 마음을 연구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약한 인공지능의 입장으로 나뉩니다.
2. 계산주의와 연결주의
계산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유한한 하나의 정보처리 과정으로 보고 기능적, 계산적 과정으로 설명하며, 인간과 컴퓨터는 모두 기호를 조작하는 물리적 기호체계라는 가설에 근거합니다. 요컨대 인간의 마음은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이고 정보처리는 기호를 계산, 조작하는 과정이며 컴퓨터의 프로그램도 기호를 조작하는 체계이므로 인간의 마음은 컴퓨터의 프로그램과 다름없다는 것이 계산주의의 핵심 주장입니다.
반면 연결주의는 정보처리 과정이 직렬적이 아니라 병렬적이라고 봅니다. 즉 정신과정은 신경망 구조와 같은 거대한 연결망 속에서 활성화가 다른 구성요소들 사이의 연결통로와 연결의 강도의 차이에 의해서 야기되는 정보의 변형이라는 것입니다. 연결주의 체계는 원자기호를 사용하지 않으며 물리적 기호체계 가설을 거부하며 하위기호 가설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결주의의 신경망 체계에서 계산 토큰은 개별적인 결절과 연결인 반면 계산주의의 기호체계에서는 LISP 원자와 같은 것입니다. 연결주의에서 표상은 결절들의 집합에 대한 분산된 패턴의 활성화이고 계산주의에서는 LISP 원자이거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계산주의와 연결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계산적 단계와 표상적 단계가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는 것입니다.
3. 인공지능 논제의 존재론적 문제
의식과 컴퓨터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가. 계산주의든 연결주의든 컴퓨터 기능주의에 그 심리철학적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기능주의는 심적 상태를 물리 상태로 간주하되, 심적인 것을 물리적 구성이 아니라 기능적 인과관계에 의해 정의합니다. 올바른 인과관계를 갖는 상태만 있다면 뇌든 컴퓨터든 다른 어떤 무엇이든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이라고 정의되는 것은 인과 관계의 패턴 상의 위치 때문입니다. 이 패턴을 ‘기능적 조직’이라 하며, 하나의 시스템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올바른 기능적 조직을 갖는다는 것일 뿐입니다. 기능주의란 심리상태는 기능 상태요 기능 상태가 물리 상태라는 견해라는 점에서 유물론의 전통에 서 있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의식의 문제에 있어 통증과 같은 의식 현상이란 내적, 질적, 주관적 경험인 동시에 뇌와 신경계에서의 일정한 신경생리학적 과정들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라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기능주의에 따르면 통증이란 의식 상태는 물리적 상태로서 두뇌나 다른 어떤 것의 기능적 조직 패턴의 일부로서 상해와 같은 어떤 입력 자극이 신경계의 물리적 상태를 유발하며 이들이 다시 모종의 물리적 출력 행동을 유발합니다.
찰머스(Chakmers)는 현상학적 의식과 심리학적 의식이라는 두 가지 의식을 구분하여 현상적 의식을 기능주의적 설명에서 배제시키고 심리학적 의식은 기능주의 및 강한 인공지능론으로 포착하려는 것이 전략이었습니다. 적어도 심리학적 의식의 영역에는 강한 인공지능론이 적용 가능합니다.
그러나 루카스식 괴델 논변은 인간은 컴퓨터 이상의 존재이고 펜로즈는 어떤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컴퓨터도 우리와 대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강한 인공 지능의 지지자의 시각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신들의 기획에 대한 논리적 장벽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적절한 계산의 실행이 의식 경험을 낳을 것이라고 믿을 많은 긍적적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산의 종류는 펜로즈 등이 생각한 것보다 다양한데 문제는 어떤 종류의 계산이 인간의 의식을 복제할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4. 인공지능 논제의 의미론적 논제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지능을 지닌 기계를 만드는 연구라면 무엇보다 ‘지능’이라는 개념의 의미가 밝혀져야 합니다. 인공지능의 반대 주장은 인간이 지니는 감정이나 독창성과 같은 성질은 기계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지능적일 수 없고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 인공지능이 초기 옹호자들은 인간의 지능을 엄격하게 정보처리 과정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지능과 관련하여 언어를 구문론적 지능, 인과적 지능, 지향적 지능으로 구분하였을 때 중국어방 논변처럼 컴퓨터는 계산적 기능을 수행하여 정확한 답을 제공하였지만 중국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문제는 구문론이 의미론에 충분한가, 즉 기능적 지능이 인과적, 지향적 지능을 확보해 줄 수 있는가인 셈입니다.
써얼(Searle)은 컴퓨터가 기호들을 조작할 수는 있지만 그 체계 내에는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것도 없으며 따라서 컴퓨터는 내재적 의미를 갖는 인간과는 구별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기호체계 모델인 계산주의에 대한 성공적인 비판으로 보이나 연결주의에 대한 성공적인 비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써얼은 연결주의 모델도 계산적 대상의 구문론적 조작이라는 점에서 계산적이고 구문론은 결코 의미론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연결주의 모델은 어떤 내재적 의미론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구문론적 체계가 어떤 단계에서 의미론적 내용을 가질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되는 질문이 됩니다. 문장의 경우 구문론과 의미론이 단어의 단계라는 같은 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즉 구문론적으로 조작되는 것은 단어이고 의미론적 해석의 대상 또한 단어입니다. 결국 구문론이 의미론적 내용을 위해서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써얼은 그 차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모든 인공지능 논제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드(S. Harnad)의 근거 지우기(symbol grounding)에서 연결주의자들은 표상 내용의 담지자를 분산된 패턴의 행위에서 찾습니다. 이렇게 해서 표상의 내재적 구조는 그것이 표상하고자 하는 의미론적 특징을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써얼은 내재적 의미론을 말하지만 그와 관련하여 요청되는 근거 지우기의 가능성을 부인함으로써 인공지능의 논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비록 연결주의자들이 말하는 능동적 기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패턴으로서의 표상 개념이 궁극적으로 의미론적 내용의 비밀을 밝힐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인간과 컴퓨터의 존재론적 차이 여부에 대한 논쟁은 지능, 이해, 의식 등의 개념에 대한 의미론적 합의를 선결문제로 요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공지능론의 진위 여부는 철학적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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